방금 떠나온 세계 by 김초엽

김초엽 작가의 신작 [방금 떠나온 세계]를 다 읽었다. 그 중 [최후의 라이오니]와 [캐빈 방정식]은 이미 예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감상글을 적었었는데 백업할 겸 가져왔다.


(2021년 10월 21일) 왜 인간은 종이 다른 동물을, 심지어는 생물도 아닌 기계를 사랑할 수 있을까? 어릴 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다마고치라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달걀만한 크기의 기계에, 그것보다 더 작은 흑백 화면을 통해 어떤 생명체를 키우는 게임이었다. 실시간 게임이라 적당한 시간 간격으로 밥도 줘야 하고 똥도 치워줬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생명체는 죽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 수업 시간이든 식사 시간이든 언제나 그 작은 화면을 들여다 봤다. 사람의 돌봄이 없으면 그것들은 죽으니까. 그것이 조악한 도트로 구현된 데이터 쪼가리일지언정. 아무튼 어른들은 당연히 나무라면서 그것을 압수했고 아이들의 돌봄을 받지 못한 다마고치는 속절없이 죽어나갔고 아이들은 크게 상처 받았다. 그것이 다마고치 광풍이 금방 사그라든 결정적인 이유였을 것이다.
김초엽이 밀리의 서재 독점으로 발표한 단편인 「최후의 라이오니」는 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좋아하는 부분이 각자 다를 것 같다. 전염병, 멸망, 복제품에 대한 윤리, 장애인에 대한 차별, 죽음에 대한 공포 등 다양하게 생각해 볼만한 주제가 나오며, 그 주제가 서로 어색하게 겉돌지 않고 잘 조합되어 있다. 하지만 난 다른 것보다 왜 인간은 알고리즘으로 구현된 (심지어 인간형도 아닌) 기계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지 그 근원이 궁금했다. 심지어 인간들은 목소리만 존재하는 Siri에게도 애정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2n년 전 내가 키웠던 다마고치를 내 가족처럼 사랑했다. WOW를 할 때 데리고 다니던 펫을 사랑했다. 아마 내가 라이오니였더라도, 셀을 사랑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나는 라이오니로서 셀의 손을 잡아주었다.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중 「최후의 라이오니」, p52

(2021년 10월 27일) 김초엽 작가가 발표한 [캐빈 방정식]을 읽었다. ‘시간 거품’이라는 가상의 물리법칙을 소재로 한 자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시간이라고 하는 건 모든 사람에게 동등학 속도로 흘러간다는, 일반인들에게는 당연한 사실을 비튼 소설이다. 물리에 대한 글, 특히 우주와 관련된 글을 읽다 보면 시간이라고 하는 개념이 우리가 생각한 거 이상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난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물리를 못했다.) 블랙홀에서는 시간조차 느리게 흐른다던지 따위의 얘기는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상상은 잘 안 된다. 시간이 정말 물리적인 의미에서 ‘느리게’ 흐른다는 건 대체 어떤 느낌일까? 블랙홀에서 만약 살 수 있다면 그럼 시간이 거의 영원히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건가? 아니면 실제로 매우 매우 느리더라도 난 못 느낀다는 것인가? 아무튼,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시간 거품’이라는 개념은 우주에서 국지적으로 나타나는, ‘시간의 흐름 속도(?)가 다른 틈’ 같은 것인데 (김초엽 작가는 이런 이론을 정말 좋아하는 거 같다. 자주 등장하는 터널 이론도 그렇고.) 인간 역시 적합한 조건 하에서 ‘시간 거품’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시간 거품’을 느끼면 일시적인 감각 왜곡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주인공은 그것을 울산의 어느 관람차에서 이러한 감각 왜곡을 느끼게 된다….는 내용이다. 사실, 엔딩은 조금 갑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소재는 늘 나한테 어려우면서도 기묘한 흥미를 불러 일으켜서인지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지금 나는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이 삶에서 내 방식대로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해.

언니가 옳았다. 모든 현상에는 원인이 있다. 세계는 거품 방정식의 해로 가득 차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언니는 아주 천천히, 영원에 가까운 속도로 입꼬리를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언니가 의기양양하게 소리를 내어 하하 웃는 것처럼 보였다.

거봐, 내 말이 맞았지.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중 「캐빈 방정식」, p321

꽤 통일성이 있는 단편집이다. ‘정상인’과는 다른 ‘장애'(?)를 가진 인물들이 나오는 「마리의 춤」이나 「로라」, 지구를 떠나 지금 현재의 인류와는 많이 달라진 새로운 인류를 다룬 「숨그림자」, 「오래된 협약」 등… 세트로 느껴지는 단편들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든 단편에 걸쳐 통일된 주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는 결코 완벽히 겹칠 순 없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순간들.

역시 난 최근 작가들 중에선 김초엽 작가가 제일 좋다. 난 외로움과 상실에 대한 이야기, 그러면서도 희망적인 이야기들을 좋아하는데 딱 이 작가가 그런 소설을 적어주고. 그리고 주인공들은 거의 다 여x여니까, 이렇게 자연스럽게 레즈비언 커플 얘기를 이렇게나 많이 적는 작가가 또 있나? 듀나도 있지만 별로 언급하고 싶지 않… 이 소설집에서 제일 좋았던 단편은 ‘숨그림자’와 ‘오래된 협약’이다.

“이곳을 사랑하게 만드는 것들은 이곳을 덜 미워하게 하지는 않아. 그건 그냥 동시에 존재하는 거야. 다른 모든 것처럼.”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중 「숨그림자」, p181

[’양말이 사막 구석에서 모자를 쓰고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제 단희에게도 입자들은 의미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워졌다. 둔감해진 후각기관은 한때 조안이 했던 것처럼, 공기 중에서 어떤 기억과 감정을 읽었다. 입자들이 단희를 그 시절로 데려갔다. 의미로는 포착할 수 없는 것들에게로, 추상적이어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너무 구체적이어서, 언어로 옮길 수 없는 장면으로, 조안이 말했던 그 공간들로.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중 「숨그림자」, p187

그때 저는 아주 긴 잠을 자고 있겟죠. 저는 땅 위로 내딛는 당신의 발걸음을 느끼고, 꿈결 속에서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거예요. 오래전 이곳에 머물렀던 어떤 반짝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서요.
아마도 그것만으로도 저는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을 그리워 하는,
당신의 동행 노아로 부터.

김초엽, [방금 떠나온 세계] 중 「오래된 협약」, p227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