칵테일, 러브, 좀비 by 조예은

최근 3일동안 우연찮게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가 좋다는 글을 2개나 봤다. 이건 운명이야. 예스24에서 검색하니 판매량도 많고 리뷰수도 많은 거 보니 또 나만 모르고 있던 책인가 보다. 도서관에서 검색했더니 직장 근처 도서관에 있길래 바로 빌려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경건한 마음으로 첫 단편인 「초대」를 읽었다. 첫 장부터 무례한 어른들이 억지로 아이에게 회를 먹이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이런 애비가 있었고 억지로 생선(회)을 넘기다가 뼈가 이에 끼이거나 목에 걸리는 불쾌한 경험을 했던 지라 나도 모르게 “으”하는 소리가 나왔다. 주인공은 목에 걸린 뼈를 성인이 될 때까지도 빼지 못했는데 그 얹힌 듯한, 거슬리는 기분을 상상하니 또 “으” 소리가 나온다. (다시 보니 표지가 뼈처럼 보이기도 한다.) 뼈는 일종의 주인공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어른에게 조신하게 굴어야 한다는 뼈, 남친의 기분을 맞춰줘야 하는 뼈… 다행히 소설은 전개가 빨라 괴로운 부분은 금방 지나가고 엔딩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목적지가 굉장히, 굉장히 멋있었다! 완전 걸린 뼈를 빼내는 수준이 아니라 부스러뜨리는 수준이다. 자세한 내용은 스포일러라서 못 적겠지만, 여자들은 다 좋아할 엔딩이다. 아무튼, 난 이 첫 소설만으로 이 책을 좋아하게 됐다.


경주 여행 중에 2시간 정도 들렀던 카페에서 나머지 부분을 호로록 다 읽었다. 단편이 4편 수록된 얇은 책이다 보니 금방 읽었다. 어제 읽었던 「초대」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는데, 두 번째로 읽은 「습지의 사랑」 또한 굉장히 좋았다. 레즈비언 소설인데 주인공들이 귀신이다! 이 소설 역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가 수채화처럼 은은하게 겹쳐서 등장하지만, 그래도 나한테 이 소설은 아름다운 레즈비언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초대」 와 이 소설 중에 뭐가 더 좋았는지 생각해 봤는데, 만약 이 책에서 딱 하나만 읽어야 한다면 난 「습지의 사랑」을 고를 거 같으니까, 「습지의 사랑」 가 더 좋았다고 말하겠다.

표제작인 「칵테일, 러브, 좀비」의 경우 제목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읽으니 킥킥 웃게 되는 제목이었다. 다른 세 편의 소설보다 발랄함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작품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는 타임 패러독스물인데, 다른 세 소설과는 다소 이질적이기도 하고 내가 타임 패러독스물에 별 감흥 없기도 한지라, 아쉽지만 그저 그랬다. 앞 세 작품이 너무 좋았는데 마지막은…음? 이런 느낌?

아무튼 책을 잘 안 읽기도 하고, 그 중에서도 소설은 SF 아니면 거의 안 읽었는데 최근 들어 좋은 여성 작가들을 알게 되어서 기쁘다. 거기다가 심지어 그 작가들이 작품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어서, 한동안은 읽을 책이 많겠다 싶었다.

뒤집히고 뒤섞인 세상에서 여울과 이영은 서로밖에 남지 않았다는 듯이 몸을 붙였다. 세상이 어떻게 되든 말든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조예은, [칵테일, 러브, 좀비] 중 「습지의 사랑」,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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