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 by 윤고은

[밤의 여행자]는 트위터를 보다가 대거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알게 되었다. ‘외국의 어떤 상’을 받았다니까 슬며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들다니 이런 사대주의자 같으니라고… 정작 난 그 전까진 대거상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ㅋㅋ 그동안 한국인들의 과도한 인정욕구를 징그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외국상’에는 나도 모르게 어떤 권위를 부여해 버리게 된다. 음, 나도 한국인 DNA 타고 난 게 맞나 봐. 아무튼 대거상한테는 고마워해야지. 덕분에 이 좋은 책을 읽게 되었어요!

추리문학상을 받았다길래 처음엔 이 소설이 사건과 탐정이 나오는 추리물인 줄 알았다. 그런 정통 추리물은 아니고 공포 소설같은 느낌이었다. 재해 지역을 관광 상품으로 만들었다는 소재(설마 이런 게 진짜 있는 건 아니겠지?)부터 섬뜩한데 살아남기 위해 인간성을 버린 등장인물들과 자의든 타의든 ‘음모’에 저도 모르게 가담하게 되어버린 무해한(?) 사람들, 그리고 그에 맞춰 죽어가는 섬의 광경 등… 상당히 섬뜩하다. 이 일이 어디서 틀어졌는지, 요나가 빠져나갈 길이란 게 처음부터 있기는 했던 것인지? 소설 문체는 마치 겨울 밤처럼 서늘하지만, 죽음에 대한 강한 암시들과 요나가 무이섬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축축하고 불쾌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마지막엔 아주 약간이나마 긍정적으로 끝나긴 하지만…

아무튼 상당히 재미있기도 해서 이틀 만에 휘리릭 다 읽었다.
살아남은 무이섬 사람들이 잘 살길 바란다.

사족: 영문판 표지가 기괴하다…

사람들은 과거형이 된 재난 앞에서 한없이 반듯해지고 용감해진다. 그러나 현재형 재난 앞에서는 조금 다르다. 이것이 재난임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해도 방관하거나, 인식하면서도 조장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은 저편 사막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p175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이 계획에서 직접 누군가를 칼로 베거나 구덩이에 밀어넣는 역할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중략) 어찌 보면 이것은 누군가가 말한 대로 학살의 한 형태였으나, 학살의 책임자는 없었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열중했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그러나 지금은 이 나무 밑에서 마주친다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따. 그건, 슬픔의 한 종류였다.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가슴을 한없이 얇게 쥐어짜는 슬픔. 어쩌면 이곳, 무이와 필요 이상으로 진해진 걸 수도 있었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그러나 지금은 이 나무 밑에서 마주친다는 두려움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 것 같았따. 그건, 슬픔의 한 종류였다.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 아니라 가슴을 한없이 얇게 쥐어짜는 슬픔. 어쩌면 이곳, 무이와 필요 이상으로 진해진 걸 수도 있었다.

[밤의 여행자들], 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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